성학에 빠져들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산부인과 의사이었던 내가 ‘인간의 성(human sexuality)’을 공부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밖에서 보면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의사들이 성을 전공하는 줄 알지만 그저 한 모퉁이를 잡고 있을 뿐이다. 


꼭 40년 전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세계성학회에 등록을 하고 참석은 했지만 그건 기실 그곳에 만날 사람이 있어 갔던 길이었다. 당시엔 학회 초청장이 없으면 교수들도 해외여행이 안 될 때였다. 하루는 볼일 보고 하루는 관광하고 사흘 째 되는 날 학회장으로 갔다. 의외로 참석 인원도 많았고 강의와 발표 논문들도 넘쳐나서 10여 군데의 방을 열고 있었는데, 그중 ‘성과 간호(sex and nursing)’란 제목을 붙여놓은 심포지엄 방엘 들어갔다. 그리곤 거기서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내용들을 들으면서 이 성학을 꼭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들은 얘기들 중에 ‘남자가 병원에 입원할 때 와이프는 집에 두고 가도 섹스는 갖고 간다’라는 것도 있었다. ‘결혼한 부부는 왜 식당에서 말없이 밥만 먹나?’라는 심포지엄도 있었다. 들을수록 너무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성학을 공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선생은커녕 제대로 된 교과서 한 권 없었다. 독학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영어로 하는 국제학회나 워크숍들을 거의 빼지 않고 다녔다. 비용도 많이 들었다. 내가 아는 지식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은 의사나 간호사들의 강의는 거의 듣지 않았다. 이렇게 배운 ‘인간 성학’은 나의 인생 후반기를 대표하는 학문이 되었고 정년퇴직 후에도 계속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람들은 성을 나이가 들면 그저 아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 모든 것은 배워서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공부하면 인생을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국영수보다도 훨씬 더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그리고 평생 꼭 필요한 이 학문을 앞으로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인간의 성은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달라 수 없이 많은 인자들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즉 생물적, 심리적, 의학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윤리적, 법적, 역사적, 종교적 그리고 나아가 영혼적 요소들이 그것이다. 따라서 성학은 영화가 종합예술인 것처럼 종합 학문이다. 심리학자, 의사, 간호사, 성치료사, 성교육자, 성상담자, 양호나 체육교사, 문학가, 예술가, 성직자, 법률가, 철학자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되는 학문이다.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 학문이다. 자칭 ‘한국의 킨제이 박사’라는 사람도 있었다. 웃기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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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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